불확실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세상 ; 바이날로그(vinalog)

Vinalog의 음악을 접했던 게 꼭 2년 전 이맘 때였다. EBS 스페이스 공연이었는데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런 멘트 없이 바로 'vinalog overture'에 이어 'one'이 연주되었는데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보는사람이나 어딘지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였다. 도무지 엄숙해할 만한 연주들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 자리에는 바날의 당시 소수 팬들도 일부 있었겠지만, 나처럼 우연히 당첨된 공짜 공연 보러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연주하는 이들은 생소한 음악을 들으러 온 청중들 앞에서 신나게 놀 수 없었을 거다. 공연 보러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소한 음악에 반응하기 조심시러웠을 거다. 새로운 걸 처음 접하면 그게 좋건 나쁘건 경직된 분위기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생소한 것이 감상자들에게 흡수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

 

어쨌든 바날은 두 시간 남짓 동안 관객에게 음악을 흡수시키며 공연이 끝날 즈음엔, 초반부와 달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말랑말랑하던 십대 때는 음악에 쉽게 빠지고 열광했었지만, 이십대를 넘기고 나서 음악에 그렇게 자극받은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받쳐주다 대놓고 나섰다를 번갈으며 전체를 조율하던 베이스 소리는 원래 그랬다 쳐도, 국악기 소리에 느낀 호감은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무슨무슨 날이다 하면 두드려대는 잉간들에 대한 살해 충동에 시달리게 하던 꽹과리 소리와, 짜증나던 태평소, 존재를 아예 몰랐던 소금의 아름다운 선율은 바날의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이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양성애자였단 걸 뒤늦게 알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 사실 이런건 시간이 지나고 나니 든 생각이고 공연 직후에는, '음악' 좋다, 는 느낌뿐이었다.

 

이후 바날을 지난 날 사랑하던 음악들 못잖게 닳도록 들으며 음악의 엘도라도를 찾은 냥 좋아라했다. 담배든 마약이든 처음엔 순한 걸 즐기다가 점점 센 걸 찾게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모던락에서 프로그레시브, 하드록, 메탈까지, 더 나가면 데쓰메탈까지 간다.(누구나 그렇단 건 아니다) 바이날로그의 (굳이 분류하자면) 록, 뉴에이지스런 사운드에 얹힌 국악기의 매력은 점차 국악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요즘은 거의 담 쌓았지만 소금도 사다가 불어 보고, FM 국악채널을 들으며 퓨전국악을 거쳐 국악관현악, 산조를 즐기게 됐으며 병창, 판소리, 민요처럼 '센' 국악까지 한창 들었다. 주변에 전도하지는 않는다.

 

바날의 매력은 생소하다는 것과, 그 생소함이 이미 완성된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거다. 피아노 드럼 베이스와, 소금 태평소 장구 꽹과리가 마치 오래 전부터 같이 연주돼왔던 것 같다. (신해철이 넥스트나 모노크롬에서, 이적이 패닉에서 했던) 록음악에서의 국악기 차용이나, (요새 국악인들이 '젊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하고 있는) 국악에서의 밴드 악기 차용 개념이 이미 아니다. 동급이다. 그거를 섞는 시도만으로 주목을 끄는 정도가 아니다. 잘 조화되었다. 국악과 양악의 소위 크로스 오버 또는 퓨전 음악을 많이 들어보지는 못해 섣불리 결론내릴 순 없지만 내가 느끼기엔 '섞였다는 데 의의'를 둘 수밖에 없는 음악이 많았다.

 

지금은 '퓨전 국악'이라는 이름 하에 여러 음악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바날만큼 공명을 주는 음악은 없다. 당시 비슷한 시도를 하는 정규 뮤지션들이 많지 않음에도, 아니 거의 처음 길을 개척하는 입장임에도 바날은 이미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음악이 가능했을까. 구성원들의 생각을 엿보면 답이 나온다. 록을 했던 베이스 주자인 이상진 씨의 싸이 홈피에서 글을 훔쳐왔다.

 

몇 년 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음악이고 어디부터는 우리것이 아닌지.... (중략) "Vinalog"가 하고있는(특히2집)은 '한국적인(혹은 국악적인) 색깔이 적다'라든가 '국악기가 장식적으로만 들어가있다'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물론 나는 위의 말들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국악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국악도 중국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중국의 악기로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전통이지만 그때는 새로운 음악이거나 남의나라 음악이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시간동안 우리나라의 정서를 담아서 '우리화'되었을것이다. 그렇담 지금의 여러장르의 음악도 그렇게 되거나 이미 그렇게 된것들도 있지 않을까?

 

또 'jazz'와 'Blues'는 흑인의 음악이다. 과거 서양의 노예제도로 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전세계로 팔려가서 그들에 의해서 전파된걸로 알고 있다. 그렇담 백인들 본인들은 지금 연주하고 있는 jazz,blues를 남의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할까? (중략)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와 락밴드가 연주하는"아리랑".  어떤것이 더 한국적일까?  (참 난감하다.^^)

국악을 하는것과 대중음악을 하는것 어떤것이 더 의미있는것일까?

내 생각엔 어떤음악을 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잘, 그리고 열심히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의 말에 머리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으로 맞다고 하는 사람은 적은것 같다.  난 그저 바이날로그가 국악이냐 아니냐의 논쟁의 중심에 있는것보다는 좋은 음악을 얼마만큼 잘 해서 많은 활동과 재밌는 음악생활을 해나가고픈 욕심밖에는 없다.

 

 

참 멋진 말이다. 바날 음악의 '생소한 완숙함'은 이런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2년간 바날의 음악을 그토록 사랑했던 기저에는 내가 지향하고픈 철학과 맞아떨어진 것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와 든다. 다른 것에 대한 배척이 아닌, 다른 것과 섞였다는 과시가 아닌, 그저 다른 것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자세. 이건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성숙한 정신이다. 비유하자면, 국악기를 차용해서 쓴 로커들은 동남아 이주민들에게 일시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과 같다. 그게 나쁘단 게 아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잘 사는 것보다는 평범한 생각이다. 바날은 음악으로 이미 그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고 있었던 거다.. 

 

국악인 출신인 타악 주자 장재효 씨의 말도 멋지다.

 

국악대중화를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대중화를 논하는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다. 대중은 누구의 권유 혹은 강제로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행위자들이 '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 안된다고 본다. 연주자들은 그저 연주,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전통음악은, 진정으로 전통음악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전통음악 그 모습 그대로를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맞는것 같다. 자꾸 바꾸면 안된다. 사람들 입맛에맞춘다는 환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사실은 행위자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할 뿐이라고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국악대중화와 아무 상관이 없는 기호의 문제일 뿐이다.

 

(중략) 물론 지난 몇 년간 그저 대중음악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퓨전 국악이 아니라 한국적 대중음악을 고민한다 말해왔다. 하지만 마음 깉은 곳에 늘 있는 이러한 고민은 어찌할 수 없다. 왜? 국악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국악인으로 규정지어져 있는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벗으려해도 벗을 수 없는 짐이다. (중략) 감상자로서 우리네 전통음악도 이제와 같이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나는 퓨전국악인은 되지 않을것이다. 국악대중화도 더 이상은 말하지 않을것이다. 그저 음악하는 사람일 것이다. 혹 국악을 이야기 한다면 옛것 그대로의 국악을 할 때에만 이야기 할것이다.

 

2집 'Two World' 속지에 써 있던 "조금은 불확실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말은 바로 바날 음악의 기본 철학이었던 셈이다.

 

 

ps>이 글을 써 둔지는 꽤 됐는데, 그 사이, 이렇게 멋진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그 이전에 멋진 연주자였던 이상진, 장재효 씨가 탈퇴했다.

 

그 사이 두 명이 빠진 채로 두어 번 공연이 있었는데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남은 두 명이 멋진 음악을 이이가길 바라지만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세상 멋지게 사는 건 참 어렵단 생각이 새삼 든다.

by 쿨쿨쿨 | 2007/12/24 02:42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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