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퀴즈방이란 게 아직 있나?

김영하의 신작 <퀴스쇼>를 읽는 내내 '퀴즈방' 아니, '채팅방'이란 게 아직도 있나 궁금했다. 주인공이 '벽속의 요정'을 만나 사랑을 나누던 퀴즈방. 사실확인차 네이버에서 '채팅'으로 검색하니 아직도 채팅 사이트는 많이 있긴 했다. 그러나 대부분 성인 인증 화면이 먼저 떠 있었다. 채팅 매매춘이 사회문제가 됐었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채팅 사이트인 '스카이러브'에 가 봤다. 7년 만인가 8년 만인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 간신히 들어가니. 이미 그 곳은 '러브 포털' '사랑 커뮤니티' 등의 수식어로 예전 같은 곳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대화방에서 '퀴즈'로 검색해 보니, 없다. 내가 본 대화방 이름을 몇 개 소개하자면 '가을엔 사랑을 하겠어요', '우리 합체할까요', 'SM 즐기실 여자분 오세요' 등등.. 8년 전 스카이러브는 이런 분위기 일변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소설 초반부의 핵심 배경인 '퀴즈방' 부분은 작가가 취재를 잘 못한 것 같다. 나는 기껏 한 곳만 보았을 뿐, 모든 채팅사이트를 다 뒤져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된장을 다 먹어봐야 맛을 아는가. 아무래도 2007년 오늘의 채팅사이트는 논문을 못 쓴 대학원 졸업생인 '롱맨'과 '벽속의 요정'이 지적인 대화를 하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숱한 채팅사이트 중 그런 대화가 오가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내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주인공인 이민수의 또래로서, 그만한 친구들을 숱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채팅에서 지적인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2007년 오늘 현실성이 없다. 
 

90년대에 PC통신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이버스페이스 속에서 모르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채팅'을 통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 중 얼른 기억나는 건 영화 '접속'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그만큼 '익명의 채팅'이 유행했던 시기가 짧았기 때문일 거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익명과의 교감'은 '동창 찾기(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를 거쳐 '싸이월드' 등 실명의 세계에 자리를 내 주었다.

 

물론 <퀴즈쇼>에서 '채팅'과 '퀴즈방'의 모티브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2007년 오늘 20대 후반 젊은이들은 '퀴즈'를 교환하며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정확히 10여년 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작가가 스스로 밝혔듯 <퀴즈쇼>는 "컴퓨터 네트워크 세대의 성장담이자 연애소설"이지만 '컴퓨터 네트워크 세대'도 10년 동안 세분화됐다. 그 안에서도 세대차가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이 점을 구분하지 못한 것은(혹은 안 한 것은?) <퀴즈쇼>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오점이다. 차라리 네이버나 다음 카페의 '퀴즈 동호회'에서 두 남녀가 만난 걸로 설정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익명의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지어주고 싶었다"면 그냥 작가가 20대였던 10여년 전 PC통신 시절을 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서두가 길었는데, <퀴즈쇼>를 상찬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다. 최근 모 남자 평론가가 어느 젊은 여자 소설가를 두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평론인지 작업멘트인지 모를 얼빠진 소리를 썼다는데, 그런 얘기는 김영하에게나 적용돼야 옳다. 김영하의 끝은 어디인가. 데뷰 때부터 훌륭했던 단편 작가로서 능력은 일단 제쳐둔다면, 장편 작가로서 김영하의 초창기는 조금 힘이 달렸던 것이 사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아랑은 왜> 같은 초기작들은 '재기'는 훌륭한데 분량이나 '장편의 맛' 측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2003년 <검은꽃>을 시작으로 2006년 <빛의 제국> 그리고 2007년 <퀴즈쇼> 등 연달아 마스터피스급의 장편을 토해냈다. 세세한 분석은 일단 제쳐두고 그의 장편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다. 적어도 나는 드라마, 게임, 영화, 음악 등 오늘날의 모든 대중문화 중에서 소설이, 정확히는 김영하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다. <검은꽃> <빛의 제국> 때도 그랬지만 항상 밤새서 읽어야 한다.(김영하 장편을 읽을 때면 이상하게도 다음 날 아침 일찍 무슨 일이 있었다. <퀴즈쇼>를 읽던 그제도 마찬가지.) 밤새 읽으면서도 영원히 소설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오늘날 대중문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검은꽃>이 역사소설의 테두리 안에서 국가, 민족, 전쟁, 혁명, 사랑, 탈근대, 종교 등을 그렸다면 <빛의 제국>은 스파이 소설의 형식을 빌어 남북분단,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공산주의, 80년대, 21세기, 개인 등을 그렸다. 앞의 두 작품보다 등장인물이 평범하고 스케일도 작아 그저 '그릇에 맞는' 정도만 해 주었으면 했지만 <퀴즈쇼>는 기대 이상이다. <검은꽃>과 <빛의 제국>을 봤을 때의 놀라움 못지 않게 많은 걸 담고 있다. <퀴즈쇼>는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이자 세태소설이자 판타지 아닌 판타지 소설이다.

 

문학이 죽었다는 얘기는 꽤 오래 전부터 들은 것 같은데 21세기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근친상간(박민규의 표현이다)'이나 하며 영화나 드라마가 판권을 사주길 짐짓 바라고만 있어야 하나. 아무리 문예지에서 '신세대'랍시고 젊은 애들을 띄우려 해도 '한국문학'이라는 고유명사에는 이미 씻을 수 없는 구린내가 배어 있다. 이제 뭘 할 건가. 한국작가들은 김영하가 책도 (상대적으로) 많이 팔고 상도 다 타 간다고 질투만 하지 말고 좀 벤치마킹을 해라.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를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 193p 


<퀴즈쇼>는 당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청년실업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서사적인 재미를 잃지 않는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각성하라고 쓴 소설이 아니지만, '자본의 폭격'으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민우의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좇다 보면 자연스레 이 상황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최고의 지적유희인 퀴즈공방전 등 '장르적' 재미가 반복되면서도 현실을 아프게 돌아보게 만드는 사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중편 <보물선>에서 처럼 이 소설도 '소설이 뭐냐, 이야기가 뭐냐'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곰보빵 할아버지'와 환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후반부의 '회사' 생활이다. 사채업자 곰보빵 할아버지는 지극히 현실적 인물임에도 마치 스크루치 영감 앞에 나타난 유령처럼, 전설의 고향의 저승사자처럼 괴기스럽다. (혹 사채업자는 자본주의 시대의 저승사자가 아닐까) 특히 아예 대 놓고 썰을 푸는 후반부, '유리'가 설명하는 '회사'의 비밀은 그야말로 김영하 구랏발의 백미다. 분명 터무니 없는 얘긴데 믿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현실은 때론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스럽고, 황당한 듯한 판타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건 구라만이, 이야기만이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소품에 지나지 않았을 뻔 했던 이런 소재를 이처럼 굉장하게 가공해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앞서 장편 두 편에서 작가의 능력이 한층 단련됐기 때문일 거다.

 

개인적으로 <퀴즈쇼>는 이렇게 굳이 구구절절 얘기를 보탤 소설은 아니다. 김영하 소설 대부분을 '머리'로 봤는데, <퀴즈쇼>는 '가슴'으로 읽었다. 작가는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를"이라고 말했다. 김영하 특유의 절망적인 감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자만 <퀴즈쇼>는 김영하의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2007년의 20대들은 휘황한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밀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소용돌이 속에 있는 건지 알지도 못하는 불쌍한 존재다. 아직 20대인 내게도 <퀴즈쇼>는 절망적이지만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by 쿨쿨쿨 | 2007/10/28 23:5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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