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라듸오 데이즈>는 엔딩의 뮤지컬 장면을 빼면 이래저래 고만고만하고 심심한 영화지만 류승범에 돋보기를 갖다 댄다면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본인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간 어떤 '이미지'에 덮여 실체를 알 수 없던 류승범의 배우로서의 기량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감독 형이 당시 연예인을 지망했던 그에게 '연예계 만만한 곳 아니다'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출연시켰다가 되려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그의 '연기력'은 실체가 없다. 그저 원래 놀던 양아치를 데려다 잘 뽑아냈다 정도가 세간의 평가였을 뿐. 내가 보기에 데뷰작은 그랬을지 모른다 이후 류승범의 연기는 거듭 성장했다. 절정은 <주먹이 운다>였다. 우직하고,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고, 상처 많고, 가족에 대한 애증이 많았는지 본인도 잘 모르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연기했음에도, 인물 자체가 예전의 캐릭터들과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제 몫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한 느낌이다. 

<라디오 데이즈>와 그가 맡은 로이드 역할은 류승범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심심한 영화이자 캐릭터로 기록될 것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독특하다. 류승범의 변신을 바랐던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제 치하 한량' 이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인상, 특유의 "악!" 소리를 지르는 빈도, 모든 게 전작들과 한참 멀다. 특히 시대극임에도 역사의식을 거세해버린 영화의 줄거리 덕에, 항상 극중 가정과 사회 배경에서 '아웃사이더스러움'의 이유를 연결지어 보지 않을 수 없었던("쟤 어쩌다 저리 됐을까") 기존의 캐릭터와 달리, 과거도, 미래도 궁금하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이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 썩 어울린 건 그저 주연으로 복귀하는 데 공백이 길었기 때문이 아니라 류승범의 배우로서 기량이 가장 순도 높게 발휘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

<야수와 미녀>

<주먹이 운다>

<사생결단>

<라듸오 데이즈>

by 쿨쿨쿨 | 2008/02/17 05:03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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